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앙시앵 레짐 (문단 편집) == 경제 == [[18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프랑스/경제|프랑스의 경제]]는 다른 구체제적 사회들과 마찬가지로 '불안정으로의 회복'이 이어졌다. 특히 프랑스는 국가 산업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절대적인 비중과 전근대적인 농업 기술로 인한 빈약한 생산물은 불안정한 사회를 구축했다. 즉, [[풍년]]이나 평범한 수확량이라면 사회가 어찌어찌 유지되겠지만, [[흉년]]이나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기반이 불안정한 경제가 심각하게 요동을 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사회가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인구가 감소하면서 사회는 다시 이전의 불안정한 상태로 회귀하게 된다. 사실 이는 비단 프랑스만의 특징이 아니라 전근대 농업국가들 모두에게서 일어났다. [[프리츠 하버]]가 [[맬서스 트랩|질소 비료를 개발해내지 않았다면]] 아직도 이러한 메커니즘에서 전 [[인류]]는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전체 사회가 '풍요'로워질 때 경제가 파탄나게 된다. [[18세기]] 초와 말 사이 프랑스는 전체 인구 2천만 명에서 2천 6백만 명으로 증가해 그 당시 [[유럽]]에서 인구가 가장 많았다. 경제규모도 확 늘어난 건 말할 필요도 없으며, 이에 따라 전체 사회가 영위하는 부의 총량 역시 증가하게 된다. '''하지만 이게 대다수 민중이 누리는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절대 아니다.''' 제1, 제2신분 수십만명의 자산이 배로 늘어나는 동안 밑에서는 빈곤층만 수백만명 늘어났다. 당시 프랑스에서 일반적인 농민이 자유롭게 소유하고 있던 땅은 '''단 1평'''도 없었다. 소유권은 [[농민]]에게 있었을지라도 지대를 귀족에게 납부해야 하는 전통적인 봉건적 [[관습]]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타이유'라고 하는데, 무려 국부론에서 애덤 스미스가 '프랑스 놈들은 아직도 중세인 줄 알고 있다 ㅉㅉ' 하며 깔 정도였다. 소유권이 농민에게 있는데 왜 지대를 납부해야 되는지에 대해서는 동양의 [[식읍]] 개념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이때문에 라부뢰르(Laboureur)같은 극소수의 독립부농들을 제외한다면 대다수의 프랑스 농민들은 삼중고(교회의 [[십일조]], 영주의 부과조, 국왕에게 내는 세금)를 겪었다. 도시도 예외가 아니라 부유한 대상인을 제외한 중소 상공업자들은 농민과 같이 높은 세금으로 고통받아야 했다. 이들 중에는 세금을 못내어 재산을 압류당하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경제 규모가 확장되면서 농산물의 가격도 상승했지만 이러한 구조 때문에 농민들이 직접 혜택을 보는 일은 사실상 없었다. '''오히려 지주들은 농산물 가격 상승을 빌미로 지대를 더 올렸다.''' 더군다나 이 시기의 프랑스 농업은 가족 규모의 소농 경영 체제로 그 수확물 역시 삼중고로 나가는 것들을 제하면 모두가 [[가정]]에서 소비하는 자급자족적 형태였다. 따라서 이들은 시장의 가격 변동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계층이었음에도 지대 상승으로 인한 고통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거기다 [[18세기]] 후반, 그러니까 혁명이 일어나기 10년 전쯤부터 [[밀]]과 [[포도]] 가격의 침체가 이어지는데, 귀족들은 이 때문에 일어난 손실을 농민들에게 지워서 탕감했다. '''정말 이 정도면 아무리 못 배운 까막눈이라도 빡칠 수 밖에 없다.''' 정말 흉작이라도 일어나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전까지 프랑스 농민들은 국왕과 귀족들의 권력에 대해 '하늘이 내려주신 권력'이라 생각하며 신분적 차이를 당연하게 인정했지만, 점점 불만을 갖기 시작했다. 사회의 전체적인 부는 늘어났지만 이에 대한 불균등한 분배가 너무 심해서 혁명을 유발한 것이었다. 제3신분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농민들을 적으로 돌린 귀족들은 결국 [[단두대]]로 손에 손잡고 사이좋게 끌려갔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건 [[1786년]] 영국과 맺은 무역조약인 이른바 이든 조약(Eden Treaty)이었다. 이 조약은 영국과 프랑스가 서로의 수출품에 [[관세]]를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었는데, 조약이 성사되자 영국에는 가격이 낮아진 프랑스 농산물(밀)의 수입이 늘어났고 프랑스에서는 가격이 낮아진 공산품(면직물 등)의 수입이 늘어났다. 그 결과 프랑스에서는 밀 가격은 폭등하고 이로 인해 빵 값이 올라가 사실상 [[물가]]가 오르고 [[비단]]이나 면직물을 만들던 제조업자가 망하고 그 밑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실업자가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물론 여기에는 관세가 낮아진 것 이외에도, [[영국]]은 수력 방적기와 방직기로 면직물을 대량생산을 하고 있는데 [[프랑스]]는 여전히 수공업 단계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도 한 몫 했다. 쉽게 말해 농산물을 팔고 공업제품을 구입하는 건 전형적인 식민지 무역이었고, 현대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으로 이어지는 구도다.] 여담으로 영국으로의 수출이 기대되었던 [[포도주]]는 별로 수출이 늘어나지 않았다.[* 포도주가 그 당시에도 프랑스산이 좋다는 인식이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영국이 프랑스산 포도주만 마신건 아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